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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윤리: 우리가 선함을 잃어가는 사회에서

viarain 2025. 5. 1.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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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때로 거리 한복판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는 장면을 마주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침묵하고 멀찍이 서 있다. 누군가는 마음속으로 묻는다. “왜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도덕적 회피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우리가 속해 있는 ‘무리’가 개개인의 판단과 윤리를 어떻게 억제하고 왜곡하는지를 보여주는 깊은 구조적 문제다.

동조와 불확실함의 유혹

무엇이 옳은지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타인의 판단을 따른다. 사람들이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기준 삼는다.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니 괜찮은 일인가 보다.” 이런 판단은 곧 우리의 양심을 잠재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동조(conformity)정보적 사회 영향이라 부른다. 우리는 정답을 모를 때, 정답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다수의 선택을 정답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이유

누군가가 “도와주세요!”라고 외쳐도, 주변의 누구도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오히려 그 외침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면 누군가는 이미 행동했겠지.” 이것이 바로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이다.

그리고 전문가의 말은 쉽게 권위로 둔갑한다. 전문가의 판단은 무조건 옳다는 믿음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도덕적 직관마저 위임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발적 침묵을 선택하게 된다.

보상 없는 선함은 사라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 말은 우리가 사회적 보상 없이는 어떤 행동도 지속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한 행동을 했음에도 불이익을 받는다면, 우리는 다시는 그 선한 행동을 반복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고통에 손을 내미는 것이 ‘정의’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 손이 법적 불이익과 신체적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한 선택이 되었다. 사회가 도덕적 행동에 대해 보상하지 않을 때, 도덕은 도태되고 침묵은 지배하게 된다.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질문

선한 행동을 하기 위해 ‘용기’만으로는 부족한 시대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왜 우리는 침묵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다시 이렇게 되물어야 한다. “내가 그 침묵을 깨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사회는 도덕적 용기를 보상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선함이 손해가 되지 않는 세계에서 살 수 있다.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회복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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