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반년 정도가 지났다.
그날은 와이프가 없이 내가 혼자 아이들을 보는 날이었다.
거실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나는 잠시 화장실에 가 있었다.
그때 작은 애가 갑자기 무섭다고 화장실 앞으로 찾아왔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큰 애가 불이 갑자기 깜빡거린다는 거였다.
확인해 보니 거실의 노란색 LED등 하나가 깜빡 거다.
그 LED등은 형광등처럼 생겼는데, 큰 사각형 둘레를 등으로 연결하여 조성한 것으로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던 것이었다.
아이들이 놀 때 흰색 불빛보다 눈이 편할 것 같아 자주 켜줬는데, 그중 하나가 작동이 불량한 것이었다.
일단은 그 등을 끄고 다른 흰색 등을 킨 채 놀게 한 다음 와이프가 왔을 때 상의해서 조치를 취했다.
등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등이 연결된 부분을 떼어내니 연속해서 연결되어 있던 등이 같이 꺼졌다.
이제 노란색 등은 사각형이 아닌 반만 불 빛이 들어왔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그 사이 등을 갈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며칠 전 이 등을 정말로 교체해야 될 때가 왔다.
이사를 가야 하는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등을 어디서 구입해야 되는지 지인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렇게 어디서 구입해야 되는지 알고 난 후 내가 교체해야 되는 등이 모두 몇 개 인지 확인했다.
며칠 뒤 작동을 하지 않는 등을 모두 떼어냈다.
그리고 등을 제거한 지 이틀이 지난 오늘, 드디어 구입을 하고 교체를 완료했다.
등이 고장나고 반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이 무색하게, 마음먹고 실제로 교체하기까지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단편적이지만 미루기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미루는 것은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무엇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계속 하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결과도 생기지 않는다.
미루기의 결과는 없음이다.
반대로 내가 그것을 했을 경우에 발생하는 결과는 다르다.
반년 전에 그것을 했다면 우리는 반년 동안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지냈을 것이다.
또한 등을 수리해야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을 미리 고치는 행동을 했다면 그 결과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엇인가가 발생했을 것이다.
따라서 행동은 있음이다.
미루기와 행동하기는 결과의 없음과 있음의 대결이다.
미루는 것도 하나의 행동이기 때문에 지속성을 가지는 한 편, 행동하기는 하나의 마무리를 의미한다.
미루는 것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한 편, 행동은 시간을 붙잡는다.
미루는 것의 복리는 압박으로 작용하는 한 편, 행동의 복리는 이익으로 작용한다.
나는 미루기를 선택했고, 그 결과 아이들 아늑한 놀이 공간을 제공하지 못했다.
나는 미루기를 선택했고, 그 결과 가족은 불편함을 견뎌야 했다.
행동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순간의 편함은 후회의 덩어리가 되어 돌아왔다.
미루기가 만들어 놓은 덫에서 벗어난 지금은 후련함과 후회가 뒤섞여 있다.
그래도 행동한 결과물이 있기에 뿌듯함도 있다.
미루기와 행동은 이처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미룸으로써 현재의 편함을 추구하는 것은 나중에 후회를 선물처럼 받는다.
굳이 필요하지 않는 선물을 위해 현재를 보내는 일을 없애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목표가 되어가고 있다.
Day 15 - 미루기의 심리: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5가지 방법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자꾸 미루게 된다…"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지 않나요? 미루기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심리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오늘은 **미루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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